한국의 풍류다인....들어가며,
우리 茶를 사랑하고 빛낸 茶人들이 참 많더군요.
우리의 전통 선비사상을 고이 지키고 절개와 충절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다간
멋지고 존경스런 茶人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오늘날 마실거리 문화에 비교하여
우리 조상들은 어떤 자세로 茶를 들고 어떤 마음으로 茶를 즐겼는지 좋은 비교가 될
것이며 또한 배울점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노래하며 詩를 짓고 茶를 즐긴 옛 茶人들...
지난 차문화 유적지 글들과 이번 글들 역시 <김대성著: 차문화 유적 답사기:전3권>에서
발췌한 것인데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며 입으로 맛을 보고 그야말로
생생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도서출판 불교영상에서 출간된 책으로
우리나라 차문화 서적 중 아직 이 만큼 방대하고 세세하게 쓰여진 책은 없다고 봅니다.
첫번째 글은 이미 차문화 중흥조 얘기에서 대충 소개한 바 있는 글인데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자~ 보실까요?


1.혜장과 다산과 초의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茶山이 백련사의 慧藏을 만난건 다산이
유배생활중에 천금을 얻은 것보다 더 귀한 만남이었다.
먼저 다산이 혜장의 적소로 찾아와 만나기를 자청하였는데
첫 만남부터 혜장이 괴승임이 드러났다.
그는 스님답지 않게 말투가 함부로였고 거칠게 없었다.
밤을 세워 논하는 동안 불승인 혜장이 주자와 역경등을 줄줄 외어
댐을 보고 다산은 놀람을 금치 못했고 이내 마음을 열어 혜장을
받아 들였다.

혜장은 다산보다 십년이 어렸다.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우의가 돈독했다. 다산은 혜장에게 詩心을 일깨워 주고 거칠고
마구잡이던 혜장의 성격도 순화 시켰다.
반면에 혜장은 다산으로 하여금 禪에 관심을 갖게 하였으며
茶의 맛과 멋을 가르쳤다.
유배지에서 다산의 즐거움은 차와 혜장 뿐이었다.

草衣가 이 무렵 백련사의 혜장을 찾아갔다가 처음으로 다산을
만났다. 첫 자리에서 초의는 다산의 높고 깊은 학문과 인품에
머리를 숙였다. 다산 역시 초의의 법도와 詩心과 茶道에 대한 식견에
찬탄을 보냈다. 혜장보다 열댓살이 아래였지만 초의는 혜장과 어딘가 달랐다.

혜장은 학식과 덕망이 높고 지혜가 뛰어나 공부한지 몇 해만에 그
이름을 떨쳤지만 성격이 거칠고 격하기 쉬웠으며 폭음과 육식을 했다.
만년에 와서 혜장은 모든 것들의 뉘우침으로 고뇌에 허덕였다.
그런 혜장과는 달리 초의는 승려로서의 온화함과 학문에 대한 깊은
탐구심으로 다산의 사랑을 받았다.

승속을 떠난 이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의 열매는 농익은 머루가
단맛을 내듯 달디달게 익어갔다. 스무 네 살의 젊고 풋내나는 중
초의와 마흔 아홉의 학문에 대한 깊이가 한도 없는 대학자 다산과의
연령을 초월한 만남은 훗날 유배지에서 풀린 이후로도 또 다산이
별세하고 난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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