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나 문의 054-533-0411.

칠지사에서.
당서에,
태화칠년 오와 촉에서 겨울에 차를 바치는 것을 파했다.
태화구년 왕애가 차를 바치고 왕애를 각차사로 했으니 차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왕애로 부터 시작되었다.
십이월 제도염철전운각차사 영호초가 상주하기를 각차하는 것이 백성에게 불편하다하니 따랐다.
당 국사보에,
옛 노인들이 일러 말하길,오십년 전에는 열황熱黃에 많이 우환해서 마을엔 전문으로 황을 락烙해 지지는 업을 하는자 있었고 패수와 산수의 여러 물 안에는 늘 낮에 앉아 저물때 까지 앉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침황浸黃이라 일렀다 근대는 모두 없고 허리와 다리병을 하는자 많다 이는 차마시기가 이룬 바이다.
당로가 서번에 사신했는데 장막안에서 차를 삶으니 서번의 사신이 묻기를,뭘하는 것이오. 당로가 말하길,번거를 씻고 소갈하니 소위 차라는 것이오. 서번의 사자가 말하길, 나도 있소. 취해 내어 보이며 말하길,이는 수주것 이는 고저것 이는 기문것...
당 조린의 인화록에,
육우는 문학이 있고 기이한 생각이 많으며 한가지 물건이라도 그 묘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차의 술이 가장 드러났다 비로소 전차하는 법을 만들어 지금껏 차 파는 집에서 그 상을 도기해 불창 사이에 두고 차신으로 향사하고 차에 마땅하고 족히 이롭다 이른다 공현에서 도자인형을 만들어 육홍점이라 호하는데 열개의 차 그릇을 팔면 하나의 홍점을 얻는다 저자사람이 차팔이가 불리하면 번번히 물부어 댄다.
당 이의산의 잡찬에,
부귀의 상은 약을 찧고 차를 연자하는 소리다.
당 풍지의 연화기에,
건양은 차기름의 꽃떡을 진상하는데 크고 작은 꼴의 제도가 각기 다르고 극히 사랑스럽다 궁의 비빈이 그 표면에 금실하니 모두 묽은장식으로 이 꽃떡으로 두발위에 베풀어 때에 북원장이라 호했다.
당 개원유사에,
은일하는 자 왕휴가 태백산 아래 거주하는데 날로 승려 도사 이인과 더불어 가고 오면서 매번 겨울철에 이르면 시내 얼음의 그 수정같고 형윤한 것을 두드려 취해 건주차를 다려 빈객과 같이 마셨다.
봉상퇴경전에,
원화 때에 관각에 탕마시기로 학사를 기다리는자는 기린초를 다렸다.
해록쇄사에,
등리가 이르길 육우는 차는 이미 벽이 되었지만 술 또한 광이라 일컬었다.
동유의 육우점차도 발문에,
경릉대사 적공이 차를 좋아한지 오래 되어 육홍점이 다려 받드는 것이 아니면 입으로 향하지 않았다 육우가 강호로 사오년 나가 놀면서 대사는 차맛을 끊었는데 대종이 대사를 불러 궐내에서 받드는데 궁인으로 차를 잘 하는자에게 명해 팽해서 궤향케 하니 대사가 한번 홀짝하더니 그만두었다 황제는 그 사기치는가 의심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사적으로 탐방해 육우를 얻어 불러 들였다 다음날 대사의 재실에 몰래 육우가 다린 차를 보내니 대사는 잔을 받들고 기쁘게 안색을 움직이며 감사하고 마시고 하면서 한번들어 다마셨다 상이 시켜 묻게하니 대사가 말하길 이차는 육홍점이 한것과 비슷하다 하여 황제는 이로 말미암아 대사가 차를 아는데 감탄하고 육우를 내어 보였다.
태평청화에,
노동은 스스로 벽왕癖王이라 호하고 육구몽은 스스로 괴괴怪魁라 호했다.
상연록에,
민강후가 말하길 육우가 차경을 지었는데 이계경이 만만히하는 바가 되어 다시 훼차론(*상백웅이 지은 차론을 헐뜯음)을 지었다 그 이름이 질疾 계자季疵라는 것은 계경이 하자한 것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일이 전기 속에 상세하다.
명승지에,
당 육우의 집은 상요현 동쪽 오리에 있는데 육우는 본래 경릉인으로 처음엔 오흥의 초계에 은거하고 상저옹이라 자호하고 뒤에 신성에 은거할때 또 동강자라 호했다 자사 요기가 일찌기 그 댁을 뵙고 못을 파 명해와 발해의 상을 만들고 돌을 쌓아 숭산과 화산의 꼴을 했다 뒤에 은사 심홍교가 지붕이어 거처했다.
속박물지에,
물건에는 몸을 달리하며 서로 제재하는 것이 있는데 비취는 금을 가루하고 사람의 기척은 무소뿔을 분말하며 북인은 침으로 얼음을 두드리고 남인은 실로 차를 해解한다.(*실로 병단차를 조각 나누는 것인데 차싹 딸때 가늘은 실로 끊어 따는 것도 해당 되겠음)
오잡조에,
건인이 차싸움을 좋아하기에 명전이라 일컫는다 전씨 자제가 잡수기슭의 외를 취해 각자 그 속의 씨앗 수를 말하고 쪼개어 승부를 보는데 과전瓜戰이라 이른다 그런데 차는 오히려 전戰을 감당해도 외는 속되다.
연복궁곡연기에,
선화이년 십이월 계사일에 재상과 집정 친왕 학사를 불러 연복궁에서 곡연했는데 가까운 시종에게 차구를 취하게 명해 친히 손수 탕을 주입하고 격불하니 조금 지니자 흰젖이 잔면에 뜨기를 드문별과 묽은 달같았다 여러 신하를 돌아보며 말하길 이는 스스로 팽차 했다고 했다 마시기 끝나고 모두 머리를 조아려 감사했다.
건순세시기에,
중춘 상순에 복건조운사가 제일 두강차를 진상하고 북원시신北苑試新이라 이름했다 방촌짜리 작은 차과인데 어용에 진상하는 것이 백개에 불과했다 누런비단으로 보호해 궤를 연하게 하고 푸른조릿대를 깔고 누런비단으로 싸고 주인으로 봉해서 밖에는 주칠한 작은 갑에 도금을 뿌려 또 고운 대오리 실로 상자를 짜서 저장하기 무릇 몇겹이라 이는 곧 작설 수아로서 한개의 차과를 만드는 값이 사십만전으로 겨우 몇잔 마시는데 이바지할 뿐이다 혹 한둘 바깥 저택에 하사되면 생사로 나누어 전해 돌리며 호사자가 기이한 완상으로 했다.
학림옥로에,
영남인이 빈랑으로 차를 대신한다.
팽승의 묵객휘서에,
채군모는 차를 의논하는자는 감히 공을 대해 발언하지 못했다 건차가 소이 이름이 천하에 중한 것은 공으로 말미암는다 뒤에 공이 소용단을 제조해 그 품이 대용단보다 정품이었다 하루는 복당 채엽승이 공을 불러 소용단을 마시는데 앉았기 오래어 뒤에 다시 한 객이 이러렀다 공은 마시고 맛보아 말하길 이는 홀로 소용단만이 아닐뿐 아니라 반드시 대용단을 섞음이 있다 하니 엽승이 놀라 동자를 불러 힐문하니 대답하기를 본래 두사람 분의 차를 갈아 만들었는데 한 객이 잇달아 오는 바람에 미처 만들지 못해 곧 대용단으로 겸했습니다하니 엽승은 공의 밝은 살핌에 신복했다.
소동파의 물류상감지에,
싹차가 소금을 얻으면 쓰지않고 달다. 또 이르기를, 차를 마시면 흔히 배가 부른데 초로 푼다. 또 이르길, 묵은차를 태워 연기하면 파리가 속히 간다.
경서당잡지에,
소나무소리 석간수소리 새소리 밤벌레소리 학소리 거문고소리 바둑소리 낙수소리 빗물이 계단에 듯는소리 눈이 창에 뿌리는 소리 차다리는 소리 모두 소리의 지극히 맑은 것이다.
송막기문에,
연경의 차가게에 쌍륙치는 판국을 설치했으니 남인이 찻가게 안에 바둑 기구를 두는 것과 같다.
송 도성기승에,
대차방은 모두 이름난 사람의 서화를 걸어 놓고 인정차방은 본래 차탕을 정격으로하고 수차방은 이는 창부집에서 어느정도 과일상을 베풀고 차로서 이유한다 후배의 무리가 돈쓰는데 감심해 건차전乾茶錢이라 이른다 더우기 차병을 든다는 것과 차를 씹는다는 명색도 있다.
랑환기에,
예전에 모군을 만난 객이 있어 때는 대서를 맞아 모군이 수건안에 차잎을 풀고는 사람에게 한잎씩주니 객이 다섯을 먹기 안에 청량해 모군이 말하길 이는 봉래산 목타수 잎이니 뭍 신선들이 먹고 마시는 것과 감당한다 했다 또 보배무늬의 꽃술이 있어 먹으면 주리지 않고 그러기에 사유정의 시에 이르기를 보문의 처음 꽃술을 따고 목타수의 떨어진 잎을 줏는다 했다.
운림유사에,
광복의 서달좌가 등위산 속에 양현루를 얽자 한때의 명사가 많이 여기에 모였는데 예원진이 더욱 손꼽혔다 일찌기 동자에게 산에 들어 칠보천 샘물을 메고오게 했는데 앞통은 차다리고 뒤에 통의 물로는 발을 씻었다 사람들이 그 뜻을 풀지못해 혹 물으면 말하길 앞은 저촉이 없기에 전차에 쓰고 뒤는 혹 흘린물로 더러움되어 그래서 발씻는 용으로 한다하니 그 결벽이 이 같았다.
서호지여에,
항주에 지난 년간에는 술집은 있어도 찻집은 없었다 그러나 부호집의 연회에는 오히려 차일을 전문으로 이바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차박사라 일렀다.
자도헌잡철에,
태산에는 차가없다 산속의 사람이 푸른오동싹을 따서 점주해 마시는데 여아차라 호한다 또 솔이끼가 있어 극히 기이한 운치가 넉넉하다.
구화산지에,
화성사에 이르러 김지장탑을 배알했는데 승 조영이 토산차를 바쳤다 맛이 가히 북원차와 대적했다.
수견록에,
무이오곡에 주문공 서원안에 차한 그루가 있는데 잎이 냄새나는 벌레 기가 있다 배화 제조해 낼때 이르면 향은 다른나무보다 더욱한다 이름해 취엽향차라 말한다 또 늙은 나무 몇그루가 있어 주문공이 손수심은데 말미암아 송수宋樹라 이름한다 이른다.
선원현교편에,
서도인이 여산의 천지사에 거주하며 밥먹지 않음이 구년이라 먹색깃의 학 한마리를 길렀는데 일찌기 산속의 새차를 따면 학으로 하여금 솔가지를 물어오게 해 삶았다 도사류를 만나면 번번히 서로 더불어 몇잔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