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陳師의 차고茶考
   

육구몽(*당의 시인)이 스스로 차를 좋아한다 일러 "품차" 한 글을 짓고 차경 차결의 뒤에 이었다 스스로 주를해 이르길 차경은 육계자가 찬한 것이라 일렀으니 즉 육우다 육우는 자가 홍점이고 계자는 혹 그의 별자別字다 차결은 지금 전하지 않고 일을 적은데 보고 부賦에 류類하는데 이르러 많이 차결을 인용하였으니 이 글은 간혹 있고 널리 퍼지지 못했다
세상에는 산동의 몽음현의 산에 나는 돌이끼를 일러 몽차라하고 사대부도 진중해하며 맛도 자못 가佳하나 전혀 형태가 이미 차가 아니고 다릴수 없으며 또 향기가 결핍해서 차경에 싣지 않은바 임을 모른다 몽정차는 사천의 아주에서 난다 바로 옛 몽산군이다 그 도경에 이르길 몽정에 차가 있으니 양기의 온전을 받는 까닭에 차가 꽃다운 향이다 방여方輿와 일통지의 토산조목에 모두 실렸다 조씨객화(*북송 조설지의 글)에 또한 말하길 아주에서 난다했다 이덕유 승상이 촉에 들어가 몽정의 차떡을 얻었는데 탕병위에 부으니 때를 지나면서 모두 화해 이로 그 참을 검험했다 문언박(*북송의 재상인 로국공)의 사인혜몽차 시에, 옛 차보에 몽정의 맛을 가장 일컬으니 로아露芽 운액雲液이 제호보다 낫다.일렀고 채양이 노래가 있어, 로아가 한번 새로 섞여 떨어진다.말했으며 오중복이 또한 시가 있어, 내 듣기로 몽정의 꼭대기 빼어난 산마루 많아 악초는 나지 않고 말숙한 차가 나네.일렀다 지금 조금있음은 대개 땅이 이미 먼데다가 몽산에는 다섯 봉우리가 있는데 그 최고로 상청봉이라 말하는데서 이 차가 나니 또한 때로 상스러운 구름과 그림자가 나타남이 있고 호표虎豹와 용사龍蛇가 거처해 인적이 드물게 이르러 쉽게 취하지 못한다 차경에 품한 것이 다음한 것은 대개 동몽산으로 이것이 아니다
세상에 전하기를 팽차에는 일횡一橫 일수一竪가 있다 하는데 탕가운데 가늘고 여린것을 기창차라 이른다 진사塵史(*북송 왕득신의 글)에 이르기를 비로소 나서 여린 것이 일창이 되고 점차 자라 펴인 것이 일기가 된다 하니 이를 지나면 쓰임을 감당치 못하리라 섭청신이 지은 차술(*술자천소품)에 말하길 창을 분粉하고 기를 말末한다 하니 대개 처음 나서 침針같으며 흰털이 있기에 창을 분한다 말함이고 뒤에 크면 기旗와 같으리니 이는 세상에 전하는 설과 같지 않다 또한 진사塵史의 뜻 같음은 모두 싹트는 차례에서 취한데 있는데 구양수 공은 신차시新茶詩에, 비루하구나 곡우의 창과 기가.라고 말했는데 왕안석 형국공은 또한 말하길, 신명재新茗齋 안에서 일기를 시차한다.한 까닭을 모르겠으니 그런즉은 취하지 못할듯 했을것 같다 어떤자는 두 공이 작설로 창기를 했을 뿐이라 하나 작설이 이에 차의 하품임을 모르고 지금 사람이 기창으로 여기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심존중(*몽계필담을 쓴 북송 심괄)의 시에 이르길, 누가 여린향을 잡고 작설이라 이름하나 정히 북객이 일찌기 맛보지 않아 영초가 천연으로 달라 하룻밤 봄바람에 한치 자라네.하였으니 혹 두 공이 또 별론이 있은것인지 또한 소동파 시에,간아揀芽해서 작설을 나누고 하사차는 용단을 낸다.일렀으니 끝내 앞의 시에서의 품평의 마땅함만 같지 않다.
내 성미가 차마시기를 기뻐하나 많이 마시지 못하고 다섯 일곱잔 행차하는데 지나지 못해도 성미가 끝내 차를 좋아해 산지를 따라 그 맛을 씹는다 또 나를 아는자 있어 주는자 있는데 대체로 비교적 천지차가 상품되어 성질이 향나고 부드러워 색이 푸르러 가히 사랑할만해서 용정과 더불어 또한 서로 아래하지 않는다 아주의 몽차는 쉽게 이룰수없다 동구의 안산차 같음은 다음하고 적성의 대반은 다음하며 릉비(*비릉)의 라해(*나개)는 또 다음 해서 맛은 비록 가능해도 잎이 거칠고 맹아류가 아니다 선성의 양파차는 두목이 가품이라 칭했으나 천지 용설龍舌(*용정)에 넘어 나오지 못하는가 한다 옛 목주차가 잎이 거칠고 맛이 쓰고 민땅의 차가 향이 섬세하고 성질이 야물다 대개 차는 곳에 따라 있으되 이름을 날리는 즉은 우두머리다 팽차하는 법이 오직 소주와 오땅이 얻었으니 가명으로 자기병에 넣어 불에 다리니 불을 보아 양을 헤리고 해안으로 끓게 하는 것으로 절도하면 담담한 금황색 같고 향미가 맑고 분분하다 이를 지나면 색이 붉고 아름답지 못하리 그래서 전인의 시에 이르길, 따는 때는 모름지기 우전의 제품이요 다리는 곳은 마땅히 팔꿈 뒤곁 가까운 곳에 와서.라 일렀으니 옛사람의 다리는 법을 무겁게 여김이 이 같았다 차를 저장하는 법 같음에는 거둘때 깨끗한 베를 쓰서 그을리는 차롱안에 깔고 차를 베위에 놓고 차롱의 뚜껑을 덮고 미미한 불로 배화한다 불이 열렬하면 건조하니 극히 마르기 기다렸다가 새 자기단지에 널어 식히고 또 새 조릿대 잎으로 한치 반 남짓 잘라 차잎을 섞어 가운대 채우고 굳게 봉한다 오월 팔월 습윤한 때는 그대로 앞의 법같이 일차 불말리면 향색이 영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맑은 재실에서 스스로 요리 해야지 일에 밝지 못한 노비로 하여금 책임할수는 없다.
항주에 팽차하는 것이 가늘은 차를 써 찻잔에 놓고 끓는 탕으로 점찍으니 촬포撮泡라 이름한다 북객이 많이 비웃으며 나 또한 불만이다 하나인 즉은 맛이 다 나오지 못하고 하나인 즉은 한차례 우리고 쓰지 못하니 또한 소비가 아깝고 옛사람의 해안 자고반의 뜻을 아주 잃어 버린다 하물며 다른 과일을 섞음에 또한 서로 들이지 못할 것이 있다 맛이 평담한 것은 좀 가능 하지만 그을린 매실이나 소금에 절인 죽순 양념에 절인 계피 앵도류 같은 것은 더욱 서로 마땅치 않다 대개 소금이 능히 신장에 들어 차를 이끌고 신경腎經에 들어 신腎을 사그리니 이는 본초에 실린 바이며 또 어찌 홀로 차의 진미만을 잃을 뿐이랴 내가 매번 산사에 이르면 일에 밝은 중이있어 팽차함이 오땅 안과 같아 자호와 두개의 작은 잔을 상위에 두고 전혀 과일을 쓰지 않고 객을 받들어 뜻에 따라 마신다 가히 맛을 알고 아취한 자라 이르겠다
----------
영창태수 전당의 진사는 어려서부터 글을 탐독하고 늙어 더욱 독실했다 군수의 인끈을 벗고 옮겨서는 시은市隱으로 도시에 통했으니 문에는 잡 손님이없고 집에는 내세울 물건이 없어 때에 돌종을 걸은 것 같다 했으나 또한 편안연 했다 입으로 외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고 발로 다니며 맘에 맞고 뜻에 느끼는 곳 있어 앞에 적어 널어놓고 손에 쥔 것이 오래어 무릇 수십종이니 인간에 회자된다 늦게는 이 편이 있어 나올수록 더욱 기이하니 어찌 중랑中郞의 장막안에 비밀할수 있겠는가 만력 계사년(1593) 기해 달에 촉의 위승방 이 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