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구양수 대명수기, 부사산수기.
송 구양수 대명수기大明水記.
세상에 전하는 육우 차경의 그 논수論水 조목에 이르기를,산의 물이 위가 되고 강물이 다음이며 우물은 아래다.했으며 또 이르기를,산의 물은 젖샘과 돌못에 게으르게 흐르는 것이 위가 되고 폭포나 솟구치고 급여울의 씻어 흐르는 것은 먹지 않는다 먹기 오래면 사람으로 하여금 목병이 생기게한다 강물은 사람에서 먼 것을 취하고 우물은 많이 긷는 것을 취한다.했으니 그 설이 여기에 그치고 일찌기 천하의 물맛을 품제한 적이 없다 장우신의 전차수기 같은데 이르러서는 비로소 위수의 차에 마땅한 것을 일곱등급을 일렀고 또 육우가 이계경을 위해 물을 논한 것을 실어 차례로 매긴 것이 이십종이다 지금 그 설을 고찰하니 모두 육우의 차경과 합하지 않는다 육우는 산의 물이 위로하고 또 젖샘에 돌못을 또 위로 하면서 강물을 다음하고 우물을 아래로 했다 유백추는 양자강을 제육으로 하고 혜산의 돌샘을 제이로 하며 ......회수를 제칠로해서 육우의 설과 서로 상반되고 이계경이 설한 바의 스무가지 물은 려산 강왕곡의 물 제일......설수 제이십 으로 하마구의 물과 서산폭포의 물 천태천장폭포 같은 경우는 모두 육우가 먹으면 병이 나니 먹지 말라고 사람에게 경계한 것이다 그 나머지 강물을 산물위에 두고 우물을 강물위에 둔 것은 모두 차경과 상반된다 육우가 부당하게 두가지 설로 해서 스스로 다르게 했다는 것이 의심되고 실로 육우의 설이라 하더라도 어찌 족히 믿을 만 하랴 장우신이 망령되이 부익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서술한 육우의 남령과 언덕물에 관한 것은 그 망령됨이 특히 괴이하다 물맛은 미악이 있을 뿐으로 천하의 물을 들어 하나 둘로 차례를 매기는 것은 망설이다 그래서 그 설 됨이 앞뒤가 같지 않음이 이 같다 그러나 양주에 있는 이 대명사 우물은 물의 아름다운 것이다 육우의 물을 논함이 정체해 가라진 것을 싫어하고 원천을 기뻐하니 그래서 우물은 많이 긷는 것을 취한다하고 강은 비록 길게 흘러도 그러나 여러물이 잡되이 모여 그래서 산물에 다음한다고 말한 오직 이 설이 사물의 이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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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산수기浮木+差山水記.
부차산은 신현의 남쪽 삼십오리에 있다 혹 부사산 소사산의 둘로 말하기도 하는 것은 부처와 노자무리들의 황탄 망괴한 설에서 나온 것이다 그 위에 샘이 있으나 앞 세상에 물을 논한자로 부터 모두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일찌기 차경을 읽고 육우가 물을 잘 말한 것을 사랑했다 뒤에 장우신의 물 기록에 유백추와, 이계경이 육우에게서 얻었다며 나열한 물의 차례를 매긴 것을 얻었다 그러나 차경으로 고찰하니 모두 맞지않고 또 장우신은 망妄 광狂 험險하고 속이는 선비니 그 말이 믿기 어려워 자못 육우의 설이 아닌듯하다 부차산의 물을 얻는데 이르러 그런 뒤 더욱 육우가 물을 아는자 임을 알았다 부차산과 용지산은 모두 려주 경계 안에 있으나 그 맛을 비교하면 부차산에 미치지 못함이 멀리 심한데 장우신이 적은 바는 용지를 제십으로 하고 부차의 물은 버리고 적지 않은 것이다 이로 그 잃은 것이 많음을 안다 육우는 그렇지 않다 그 설에 말하길 산물이 위고 강이 다음이며 우물이 아래고 산물의 젖샘과 돌못에 게을리 흐르는 것이 위다 했으니 그 말이 비록 간단해도 물을 논함을 다했다.
부차의 물이 이후李侯에게서 나왔다 가우이십년(*가우이십년은 없다 사고전서본에서는 장우신의 전차수기의 부록으로 구양수의 대명수기와 부사산수기를 나누지 않고 한데 실었는데 탈자와 빠진자가 있다) 이후가 동류에 진주하고 뒤에 려주로 나와 수령함에 인해서 금릉에 놀면서 장산에 올라 그 물을 마시고 또 부차산에 올라 그 산위에 돌못이 있는 데 이르러 졸졸 사랑할만했으니 대개 육우가 소위 젖샘의 게을리 흐른다는 것이라 마시니 달아 이에 도기圖記를 고찰해 노인들에게 물어 그 사적을 얻고 인해서 그 물로 서울의 내게 보내줬다 내가 보답해 말하길,
이후는 가히 어질다 이를수있다 천하의 물건을 모조리 궁리해서 그 하고자를 얻지 못함이 없으니 부귀의 즐거움이고 장송長松에 그늘하고 풍성한 풀을 자리해 산에 졸졸 듣는 물을 듣고 돌샘에 똑똑 떨어지는 물을 마시는데 이르러서는 이는 산림의 즐거움인데 산림의 선비가 천하의 즐거움을 보고 하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혹 마음에 원해 하고자 함이 있어도 힘이 얻지못해 그치는 것은 이는 능히 물러나 즐거움을 여기서 얻는 것이다 저 부귀자의 능히 물건을 거두어 들일수 있는 것이면서 같이 겸할수 없는 것은 오직 산림의 즐거움인데 이후는 부귀에서 나고 자라 이목에 싫컽하고 또 산림이 즐거움 됨을 알아 붙잡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유은하고 궁벽한데 끊음에 이르러서는 남들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모두 능히 얻었으니 가히 그 겸하여 사물에 취한 바가 많다 이를수 있다 이후는 절도를 꺽고 배우기 좋아해 어진 선비와 잘 사귀었으며 정사에 민첩해 이르런 곳에는 능하다는 이름이 있었다 무릇 물건은 스스로 나타내지 못하고 남을 기다려 빛내는자 있고 그 물건이 반드시 귀한 것은 아니나 사람으로 인해 중해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그 일을 뜻해 세상으로 하여금 기이한 샘이 이후에게서 나와 시작함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