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그 내면의 세계...

심심한데...또 茶 이바구 보따리나 한 번 실실 풀어볼까...요?
기실, 茶라는 것이 자극적이거나 요란하거나 특이하고 독특한 맛과 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의 여여함을 닮아 담담하고 조용하고 푸릇한
담백함 속에 갖춘 향기와 맛을 제공해줄 뿐입니다. 茶는 자연을 닮고 그 茶를
마시는 사람은 茶를 닮게 되며 곧 자연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계적 과학물질 문명과 초스피드를 요구하는 정보화 시대에 현대인들은
갈수록 심성이 조급해지고 불안정하고 사나워지며 이로 인해 생존의 중요한
기로에 선 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서 몸과 마음의 여유를 잃기 쉽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옛 사람들이 가졌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처럼, 삭막하고 자극적인 삶을 살면 취하는 모든 것들도
삭막하고 거칠고 자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는 2등을 인정하지 않고 1등만이 살아남고 성공하는 것이라며 어린 학생들
부터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순수한 우정과 꿈을 키우며 자라야 할 학생들은,
급우와 교우는 내가 성공하고 출세하는 데 하나의 라이벌일 뿐입니다.
미래의 주역들인 내 아이들은 지금 좋은 성적을 요구 당하며,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이 미래의 행복이다"라는 당근을 내보이며 공부지옥으로 내모는 채찍질로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커 가는 우리 아이들은 자칫 인성이 메마르고 비뚤어질 위험이
크다할 것입니다. 실로 불안한 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는 변혁을 요구합니다. 자꾸만 유기체인 사람을 기계화시키려고 합니다.
기계문명 속에서 각종 첨단이기(利器)들로 무장시키고 굴레를 씌우려 합니다.
문명의 굴레...어쩌면 우리 스스로 그 굴레 속에 갇히려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의 가치관을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찾는 가치관이 아니라
기계문명 속에서 물질의 안락함이 부여하는 사탕발림의 삶 속에서 그 가치관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루어지는 환경과 인성의 파괴에는 슬쩍 눈을
돌리고 모른 체 하며 말입니다.

茶, 담담하고 조용한 맛...이제는 일상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혀의 감각을
원초적인 자연의 여여하고 담담한 맛을 찾을 줄 아는 여유를 회복해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자연의 맛인 담담하고 순수한 맛에 길들여지면 심성 또한 담담해진
다는 것입니다. 산 속에서 수도하는 스님이나 仙道人, 또는 속세에서 명상이나 정신
수련하는 사람들 역시 차를 즐기고 음식을 담담하고 싱겁게 먹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심신의 순화와 여유를 회복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결국, 오래도록 그렇게
실천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숨막히고 어지럽도록 돌아가는 이 세상의
대열에서 벗어난 듯 참여자가 아닌, 방관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茶라는 것이 즐기다 보면 처음에는 알지 못하던 것이 차츰차츰 그 담담하고
여유로운 맛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 先人들이 구구하게 읊조렸던 茶예찬들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알게되고 결국은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입니다.
茶는 이렇게 싱겁고 덤덤하고 아무 맛이 없는 것 같지만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일체의 미각을 닫은 후 마음으로 茶를 마신다면 향기롭고 푸른 우아한 자연의 맛
과 멋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양심이 있고 덕성을 기르는 사람에게는 곧 茶가
밥인 것입니다. 마음의 양식 말입니다. 오늘 저하고 茶 한 잔의 여유를 즐기실 분...
茶, 너를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