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 문화의 중흥조 이야기...들
화려했던 고려시대의 차문화가 유교문화를 수용한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점점 쇠퇴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말경(1700년대 후반 쯤)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사실 차 문화는 사찰의 스님들이 다선일여라 해서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라 조선시대에 들어서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차 문화의 중흥에 불을 붙인곳은 바로 사찰,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유배 가셨던
바로 강진의 만덕산 백련사. 이곳에는 우리 차 문화에 불씨를 당긴 두사람의 인연이 있
었으니 다름 아닌 다산과 혜장 스님이었습니다. 서로 만난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불교와 학문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헤어졌는데 헤어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흠모의 정을 느끼고 그리워 하게 됐는데 이때 다산의 나이 44세 혜장의 나이 34세였다합니다.
외로운 유배생활에서 진실함과 학식을 겸비한 혜장을 만난 것은 다산에게 실로 가슴벅찬
반가움이요 충격이었습니다. 혜장 역시 마찬가지여서 연상의 대학자를 깊이 흠모했죠.
밤마다 다산은 혜장을 그리워하고 적적함에 잠못들어 했는데 어느날 밤 자정이 넘도록 잠못들고 뒤척이던 차에 인기척이 있어 벌떡 일어나 문을 여니 아! 거기에는 꿈에도 못잊어하던 혜장이 서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다산이 차를 안 것은 이때였고 혜장에게 차를 배우고 혜장은 다산에게 학문을 배웠다는 강진땅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입니다.

아무튼 다산은 혜장의 입신의 차맛에 홀딱 반했고 혜장은 다산의 학문과 인품에 홀라당
반했으니 여기서 부터 우리 차의 소생이 시작될 싹이 틀 줄이야....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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