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화 유적지2.....죽서루
죽서루(竹西樓)

강원도 삼척 죽서루에 올라 차 한잔을 마셔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는데...
눈앞에 펼쳐진 오십천(五十川) 푸른 물줄기는 나무가지에 설화(雪花)가 피는 겨울에도 신록이 눈부신 봄에도 죽서루에 오르면 차 한잔 생각이 절로 난다는데...

고려말 조선초까지만 해도 죽서루는 차 향기 그윽한 천하의 절경이었다.
동안거사 이승휴(動安居士 李承休),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 가정 이곡(稼亭 李穀),
율곡 이이(栗谷 李珥), 송강 정철(松江 鄭澈), 미수 허목(眉수 許穆) 등 당대의 내노라 하는 차인들이 소매를 걷고 한숨에 써 붙인 서액도 즐비하다.

송강은 죽서루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진주관(進珠館) 죽서루
오십천(五十川) 내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한강의 목멱(木覓:남산)에 닿고싶네.

죽서루는 툭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는 다른 정자들과는 달리 오히려 바다를 등지고 두타산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오십천을 굽어보는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높고 낮은 자연 암반 위에 17개의 각각 길이가 다른 기둥을 세웠다.
그 윗층에 20개의 기둥을 세운 독특한 양식이다.

죽서루는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모른다.
두타산에 은거하였던 이승휴의 문집에 죽서루 제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려 원종(1266년) 이전에 지어진 것일거라 추정만 할 뿐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죽서루는 객관 서쪽에 있다. 절벽이 천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듯한 누각을 지었는데 아래로 오십천에 임하였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가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서 영동의 절경"이라고만 적혀있을 뿐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대숲이 별로 보이지 않지만 죽서루는 말 그대로 대숲의 서쪽에 있는 누각이었다. 이 대숲 바오 이웃, 서북쪽에 언제나 차 연기 풀풀 날리던 죽장사가 또 있다.
고려 충숙왕 때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으로 유명한 茶人 근재 안축(謹齋 安軸.1287~1348)이 대숲에 가리워진 죽장사의 모습을 한수 시에 이렇게 그렸다.

웅덩이에 솟은 누각 수부(水府)에 임하였고
담을 격한 선당 바위를 기댔네
스님을 좋아하는 참 뜻 아는 이 없고
10리에 뻗친 차 끓이는 연기
대숲에 이는 바람에 나부낀다...

대나무가 여러 해 되니 아람되었는데
손수 심던 스님은 지금은 아니로세
선탑(禪榻)과 다헌(茶軒)은 깊숙해 보이지 않고
숲을 뚫는 새만이 돌아 갈 줄 아는구나.

또 강원 관찰사였던 용재 성현(傭齋 成俔.1439~1504)도 순시 도중에 이곳에 들러 죽서8경의 연작시를 남겼다.

푸른 소나무 울창하게 봉우리를 감싸고
집을 사이하여 서로 부르니 스님이 돌아 나오는구나
차솥을 마주하여 종일토록 이냐기 나누니
문득 몸에 청정한 기운 느끼겠네.

수 많은 풍류객들이 죽서루에서 서성이다가 차향기를 쫒아 혹은 은은한 범종소리에 이끌려 대숲을 헤치며 올라왔을 오솔길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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