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화 유적지2.....선교장 활래정
조선시대 차실의 원형-선교장 활래정

강원도 강릉 선교장(船橋莊)의 茶室인 활래정(活來亭)은 조선말 사대부의 차풍을 현 시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유적이다.
여기는 특히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부속 차실이 있다는 건축양식과 8대를 전해 내려온 손때 묻은 야외용 차통 등 귀중한 茶具 97점도 볼 수 있다는데...
활래정의 나이 180년, 전국에 이만한 茶亭은 통털어도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유적이다.

가지마다 밝은 꽃과 빽빽한 대나무 들어 있는데
주인은 작은 연못 속의 정자에 있네
그름이 걷히니 푸르름이 산봉우리에서 그림처럼 드러나고
비가 내린 후 붉은 꽃은 젖어서인지 온갖 풀이 향기롭구나
느지막히 휘장치고 동자불러 차 한잔 얻으니
개인 난간에는 퉁소부는 객이 있어 차향속에 잠겨있네
그 중에서 신선의 풍류 얻을 수 있으니
아홉번이나 티끌 세상이 헛되이 긴 줄 알겠구나

활래정 지붕 안팎으로 걸려있는 빽빽한 현판 중 1850년께 판각된 오천 정희용(烏川 鄭熙鎔)의 칠언시다.

茶室로 쓰기 위해 오은거사 이후(鰲隱居士 李후:1773~1832)가 활래정을 지은 것이 순조
16년인 1816년, 46세 때였다. 이 시기는 바로 근세의 대표적인 茶人 해거도인 홍현주,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 스님등이 차 한잔으로 청교를 맺던 조선조말 차문화의 전성시대였다. 당시만 해도 한양에서는 멀기만 한 험준한 대관령을 넘어 이곳 활래정을 추사가 다녀갔고 편액과 병풍, 추사가 남긴 차시등을 봐서 활래정 주인 오은과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추사뿐 아니라 순조 때 영상이었던 운석 조인영(雲石 趙寅永), 근대에 와서는 소남 이희수(少南 李喜秀), 무정 조만조, 규원 정병조, 성당 김돈희, 해강 김규진, 일주 김진우,
백련 지운영, 농천 이병희, 성재 김태석, 옥소 심형섭, 차강 박기정, 등과 신학문에 뛰어났던 성재 이시영, 몽양 여운형 등 수많은 거물급들이 이곳을 들러 詩畵를 남기고 갔다. 그야말로 신선의 풍류가 휘감아 도는 정자라 할 만하다.

선교장의 사계(四季)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단다.
강릉을 가리켜 사계의 고을이라 한다면 선교장은 사계의 장원이다.
활래정의 앞 논에 해빙의 물이 출렁이고 그 물 위로 봄바람이 파문을 일으키며 이곳의 봄은 시작된다. 연못에서 연잎이 솟고 烏竹荀이 얼굴을 내밀며 아지랭이가 춤추는 앞 냇가 버들가지와 더불어 이곳의 봄은 생동하는 아름다움으로 출렁인다.
여름은 뒤 솔밭에서 온다. 짙은 녹음을 이루는 노송, 고목 속에 온갖 새들의노래소리, 매미, 쓰르라미 소리로 한여름이 짙어간다. 이때 제철을 만나는 활래정의 연꽃은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뽑아 올리고 자태를 뽐낸다.

이런 사시사철의 아름다움으로 또 역대 주인들의 후덕함으로 선교장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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