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문화 유적지.....1

1.정토보서(淨土寶書)와 징광사지(澄光寺址)

징광사에서 간행된 정토보서는 백암스님(柏庵:1631-1700)등이
만든 우리나라 차문화에 귀중한 자료로서 각광 받을만한 것이다.
정토보서는 茶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법, 차를 놓고 혼례를 올리는 법
시신을 화장하여 묻거나 재를 뿌릴 때 차를 공양하는 의식 등
사찰에서 행하는 모든 의식에 차가 어떻게 공양되는가의 법도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정리한 책이다.
다비식 구절에는 화장 하기전 茶를 올리고 나서 운구앞에서
방울을 울리며 다음과 같이 다게(茶偈)를 읊는다.
“조주에 새로 딴 잎차를 절하며 올립니다.
애오라지 진한 정을 茶에 녹여 아뢰는 것은
그저 한 조각의 작은 정성입니다.
깨어있고 취하고 혼미함은 삼계의 꿈이오니
몸을 뒤집어 법왕성에 드소서.”

趙州茶芽親拜獻 耶表沖情一片誠
覺取昏迷三界夢 飜身直到法王城

.....한학자 장인용 역....

이 책에는 또 당나라때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전에는 잎을
끓여 물을 마시거나 또는 데쳐서 나물로 무쳐먹으면 씁쓸하고
쓰다해서 차를 씀바귀 도( )자로 쓰다가  자를 최초로 茶자로  
썼다고 적혀있다. 당시 징광사는 국내 최대의 출판사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징광사에서 새겨진 수 많은 불서들이 송광사나
선암사 쌍계사등지에 진장되어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2.진주 청곡사( 晋州 靑谷寺)

진양군 금산면 갈전리 18번지에 자리잡은 월아산 청곡사(靑谷寺)
는 절 주위에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신라 헌강왕 4년 도선국사(道先國師)가 창건해 고려 우왕 6년
실상대사(實相大師)가 중수하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 복원했다. 조선말엽 포우대사가 대웅전을 비롯 절 전체를 중수
했다는 청곡사는 해방전 까지만 해도 경내의 야생차로 한해
소비량을 채우고도 남았다고 한다.

대웅전 법당 왼편에는 창건주 도선국사와 실상대사 그리고
포우대사의 영정이 그려져 있고 그 영정 앞에는 월봉스님의
흑백 사진이 있다. 영정 앞에는 차주전자와 찻잔이 경전과 함께
놓여있다. 도선국사가 남강가에서 청학이 날아오른 서기를 보고
창건했다는 청곡사 입구에는 방학교(放鶴橋)라는 다리가 있고
경내에 한학루(閑鶴樓)라는 정자가 다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한학루 아래에는 연못이 있고 거기에는 고니가 놀고 있다.
대웅전 뒤쪽에 야생차밭이 있는 청곡사는 진주의 차 유적지로서
잘 일구어져 있다. 원래 진주는 차향(茶鄕)이다.
5월 25일 차의 날이 제정 된것도 진주이고 차의 날 선언문도
진주서 만들어 졌다. 또 진주는 충절의 고향이다.
진주 대첩때 왜장의 몸을 껴안고 동반투신한 논개의 의절이
남강의 유구한 흐름속에 살아있고 강가의 촉석루와 의암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끈다.

고려말 포은 정몽주가 영남을 순시 할 때 머물러 갔다해서
22대손 정상진씨가 1939년에 비봉산 기슭에 비봉루(飛鳳樓)라는
정자가 있는데 진주의 유명한 서예가인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선생이 이곳을 서실로 꾸며 후학을 지도하며 서실과 다실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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